다부지고 말쑥한 이 스피커의 ‘카리스마’라는 거창한 이름은 첫인상에서는 별로 어울려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며칠을 시청하면서 보니 알렉산더 시절의 제왕적 이미지라기 보다는 박신양이나 욘사마풍의, 유려한 매너와 세련미를 갖춘 신세대 카리스마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용 서브우퍼인 ‘카라’는 대역보정의 역할 이외에 디자인으로나 사운드 적으로 훌륭한 스탠드가 되기도 한다. 약 열흘 정도의 시청 소감으로는 원래 일체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위화감이 없고 대역간의 이음새가 뛰어났다. ‘카리스마’만을 단독으로 시청해보면 ‘카라’가 필히 있어야 비로소 ‘카리스마’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컨셉의 구성은 종종 직간접적으로 마주치게 되지만, 바디가 분리된 일체형의 느낌을 주는 이런 조합은 드물었던 것 같다.

시청을 해보면 첫마디부터 대단히 적극적이고 명쾌한 사운드를 보여주는데, 직설적인 표현속에서도 음의 감촉이 매끈매끔하고 질감표현이 좋다. 음의 입자들이 선명하고 또박또박 짚어주는 스타일이지만, 외모에서 순간 짐작했던 고역이 강한 스피커는 아니었다. 원래 이런 성향의 스피커는 감미료가 첨가된 듯한 컬러레이션, 혹은 연예인 기질을 보이는 경우도 많은데, 카리스마에서는 의도적인 윤색의 느낌이 거의 없으면서도 윤기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가 빠르고 단시간 내에 시청자에게 어필할 만한 사운드 컨셉을 보이고 있다.

레퍼런스적인 차원에서 ATC50SL mk5와 같은 풀레인지와 비교해 보면 뒤쪽으로 펼쳐내는 입체감이 다소 근거리로 다가오고, 바닥에 단단히 고착되어있는 듯한 안정감이 덜한 정도, 그리고 버텀엔드를 타고 흐르는 기운 등은 다소 밀리는 듯하다. 하지만, 이 이상 ATC가 비교우위에 있는 장점들을 찾아내기는 힘들었다. 열거한 다소간의 열세를 제외한 영역에서는 ATC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는데, 특히 빠른 패시지에서도 일체의 모호함이 없이 일필휘지를 날려주는 장면은 최근 시청한 스피커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중역대의 표현에 있어서도 침투력있는 사운드에 쉽게 빠져들게 만드는 스타일은 신선하면서도 강렬하다. 이 부분, ATC의 자존심과도 같은 SM75-150S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표현력과 일장일단을 따져가며 겨뤄볼 만하다. 뒷길이가 길게 설계된 이 스피커의 저역은 압도적이라거나 파괴력을 느끼거나 하는 쪽이라기 보다는 윤곽을 단정하게 그려내는 해상력있는 저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저능률지향설계도 아니고 그리 유별난 앰프가 아니라도 웬만큼의 저역을 만들어준다.

토마스 햄프슨이 부르는 말러의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한 때 필자의 애청기였던 LS3/5a 에서의 소리에 필적하는 스피커는 상당히 드물었다. 하지만, 몇 곡을 듣는 동안에 결국 참으로 오랜만에 이 곡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3/5에 비해서 낮은 중역으로 갈수록 울림이 적은 소리를 들려준다. 대역과 스테이징의 여유를 늘리면서 사운드적으로 단정하고 응집력이 있는 저역을 만들어낸다. 피노크가 지휘하는 비발디의 ‘조화와 영감’을 들어보면, 바이올린의 광채가 더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샴푸광고에 나오는 조명 가득한 머릿결을 결 따라 비벼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통울림도 단정해서 원래 이곡의 취지와 녹음의 상태를 잘 반영시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룹 드림 시어터의 ‘메트로폴리스’와 같은 차고 금속성의 분석적인 록넘버를 들어보면 다장르 표현이 좋은 이 스피커의 장기를 잘 보여준다. 원곡이 표현하려는 이상의 거친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차분함속에 강렬함을 번득이는, 마치 내공 있는 무술을 하듯이 분위기를 몰아가서 감탄스러웠다. 부잣집 도령이 씨름도 잘하는 모습이다.

마치 선사시대 퇴적층을 보는 듯한 독특한 마호가니 목질의 외관은 슬림한 바디와 더불어 훌륭한 인테리어를 이룬다. 멋진 소리와 더불어 소위 ‘자리를 빛내주는’ 꾸밈새도 갖추고 있다. 음향특성도 그리 까탈스럽지 않다. 다만, 하단의 우퍼 방향쪽을 치워주고 가까운 거리에서 유리 등의 반사를 적절히 통제해줘야 원래의 음상표현효과와 스테이징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바깥쪽으로 우퍼를 향한 상태에서 토우인을 약간만 준 상태가 대역과 스테이징에서 가장 좋게 들렸다. 해상력과 음악적 표현력 양면에서 모처럼의 강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콤팩트한 사이즈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지만 위력있는 사운드를 감추고 있다. 상하단을 합쳐 700만원대의 가격이 성큼 다가서기 어렵게 하겠지만, 시청을 하게 되면 상당부분 자제력을 잃게 할 것 같다. 자신이 없다면 시청을 하지 않는 게 속 편한, 하지만 분명 누군가에게 추천하게 될 멋진 스피커이다.

스테레오뮤직 발췌

오승용